사진수다 6월

6월의 사진 수다는 우리를 휩싸는 사건과 감정을 어떻게 사진과 글로 뒤섞을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었습니다. ‘사진과 글로 뒤섞는다.’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사진과 글을 사건이나 사태를 사후에 기록하거나 반성하는 목적으로만 쓰고 싶지 않아서 입니다. 사진과 글의 기본적인 속성이 기록이긴 하지만 사진과 글이 사태를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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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던 사람과 기괴한 이별 후 한동안 무기력한 상태로 지냈습니다. 수시로 떠오르는 생각들이 날 괴롭혔습니다. 그 사람은 왜 그런 선택을 해야 했을까? 나를 좋아하기는 했던 것일까? 무수한 질문에 무수한 결론을 내렸지만, 어떤 생각도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 생각들이 나로부터, 그리고 괴로움으로부터 나온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만나는 사람에게 나를 사진 찍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관광지에서 사진을 부탁하듯이요. 사람들이 흔쾌히 응했습니다. 그러고는 나도 당신을 찍어도 되겠냐고 물었습니다. 그렇게 나는 밖으로 나갔고 사람들을 다시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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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사진을 찍는 행동이 어떤 해답을 주거나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누군가에게 말을 걸고 그들을 보고 그들에게 내가 보여기기를 선택했을 뿐입니다. 그런 상황이 나를 흔들 것이고 어디론가 데려갈 것이라는 추측만을 할 수 있었습니다. 단지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안정을 찾은 것인지, 이런 행동이 도움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던 중 작은 사진강좌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소피 칼은 설치미술가, 개념미술가, 사진작가 등으로 소개할 수 있겠습니다. 그녀가 자신을 포함한 사람들과 대화하는 방법이 그런 모양이 된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작업은 책으로 출판되기도 했습니다. 한국에 번역 소개된 책은 세 권으로 ‘시린 아픔’, ‘진실된 이야기’, 그리고 ‘뉴욕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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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린 아픔’은 소피 칼이 연인으로부터 일방적인 이별 통보를 받게 된 날을 기점으로 전 90일과 후 100일의 기록입니다. 이별 전 90일은 연인이 떠나지 않을까 걱정하며 지낸 일본에서의 포토로그입니다. D-90, 카운트다운이 시작됩니다. 이별의 D-day에 사진 한 장을 찍습니다. 그 사진은 이별 후 100일 간 반복됩니다. 책에는 100일 전부가 기록되어있지는 않습니다. D-day의 상황에 대한 이야기가 반복됩니다. 각 쪽의 맞은 편은 사람들로부터 받은 아픈 사연을 담은 사진과 글로 채워져 있습니다. 100일이 되자 더 이상 쓸 말이 없는 듯 사진만 덩그러니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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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겨운 상황을 만나면 우리 의식은 어딘가로 숨거나 도망가버리려고합니다. 중독과 화풀이, 체념, 우울, 기분전환. 결국 가까운 것을 놓치게 됩니다.

가장 가까운 것은 자신의 시간 그리고 여기가 되겠지요. 사진과 글은 이렇게 멀리 가버리거나 숨어버리는 의식을 지금 여기로 다시 돌려놓는 유용한 도구가 됩니다. ‘진실된 이야기’의 번역자, 심은진

사진이 현존을 증명하는 것이라면, 글은 현존을 비우면서, 즉 부재를 통해 존재한다. 그녀에게 사진은 말이 줄 수 없는 확실성을 보장해준다. 그러나 글은 사진이 보여준 평범한 혹은 아무것도 아닌 대상을 이야기가 가득 찬 대상으로 바꿔준다.사진이 흐르는 시간을 정지시켜 ‘그곳에 있었던 순간’을 보여준다면, 글은 사진에 시간을 돌려주어 사진 속의 평범한 대상을 흘러가는 시간으로 둘러싸인 특별한 것, 유일한 어떤 것, 즉 서시로 변모시킨다.

‘진실된 이야기’의 번역자, 심은진의 옮긴이의 말에서